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69) 박사는 “천국이나 사후세계는 실재하지 않는다. 천국이나 사후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동화일 뿐”이라며 “마지막 순간 뇌가 깜빡거림을 멈추면 그 이후엔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호킹 교수는 이어 “뇌는 부속품이 고장나면 작동을 멈추는 컴퓨터이기 때문에 고장 난 컴퓨터를 위해 마련된 천국이나 사후세계는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스티븐 호킹과는 대조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이븐 알렉산더라는 신경외과 의사입니다. 이 분이 ‘나는 천국을 보았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출간되자마자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으며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천국을 보고 경험했다는 많은 사람들이 책을 내곤 했지만 비성경적 내용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된 것입니다. 그것은 이 책을 쓴 이븐 알렉산더라는 저자의 이력 때문입니다.
이븐 알렉산더는 과학 학술지에 150편 이상의 논문을 기재하였고 국제의학 컨퍼런스에서 200회 이상 논문을 발표할 만큼 뇌와 의식의 작용에 관해 뛰어난 업적을 쌓은 세계적인 뇌의학 권위자이자 하버드 신경외사 의사입니다.
그런데 이런 세계적인 뇌의학자가 2008년 11월 10일, 54세의 나이에 희귀한 질병에 걸려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아팠던 적이 없었던 그는 응급실에 누워 괴성을 지르며 뒤틀리고 있었습니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급히 달려왔고 신을 믿지 않던 그는 “하나님, 저를 살려주세요!”라고 외친 뒤 7일간 혼수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대뇌 신피질, 즉 우리를 인간이게끔 해주는 뇌의 겉 표면이 기능을 멈춰버린 것입니다” 그는 7일 동안 물리적 뇌의 한계에서 벗어나 완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의식의 세계를 직면한 것입니다.
그는 7일 간의 체험 이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간 그곳은 실재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의 삶이 완전히 꿈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곳은 실제였다.” 그리고 “내 남은 평생 노력한다 해도 내게 다가온 이 실체를 제대로 보여주고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묘사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는 7일간의 체험으로 육체와 뇌의 죽음이 의식의 종말은 아니라는 것, 인간의 체험이 무덤을 넘어서까지 계속된다는 것, 우리들 하나하나를 사랑하며 우주와 모든 존재들이 궁극적으로 어디로 나아가는지 보살피고 있는 그런 하나님의 응시 하에 우리 의식은 계속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는 이 체험 이후 교회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책에서 “신을 믿게 되었다”기 보다는 “신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뇌의학자요 신경외과 의사인 이븐 알렉산더는 자신의 체험을 근거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영적 세계의 시작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 설문 내용과 결과
3주 전 천국에 관하여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2부 예배는 주로 교회 중직자들이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객관성을 갖기 어려워 청년들이 주로 예배를 많이 드리는 5부 예배를 중심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설문에 응답해 주신 분이 633명이었는데 20대가 35.9%, 30대가 28%로 이삼십대가 64%를 차지하였습니다.
설문의 내용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로, 천국이 있다고 확신하십니까? 둘째로, 천국하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1. 천국이 있다고 확신하십니까?
응답자 619명 가운데 96.8%인 599명이 확신한다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확신이 없다고 응답하신 분은 2.4%인 15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성도들이 천국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2. 천국하면 연상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① 황금길, 왕궁 = 11% (68명)
② 에덴동산 = 18.1% (112명)
③ 예수님 = 63.9% (394명)
④ 기타 = 7.0% (43명)
63.9%가 천국하면 예수님이 생각이 난다고 응답하셨습니다. 그런데 10대인 청소년들은 47.1%가 황금길, 왕궁이라고 대답했고 예수님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29.4%에 불과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 청소년들은 천국을 황금길과 왕궁으로 이해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만화성경을 많이 본 까닭이 아닌가 싶습니다.
설문의 내용만을 놓고 보면 우리교회 성도들은 천국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천국의 중심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도 알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국과 지옥은 실재로 존재합니다. 아무리 과학문명이 발달해도 그리고
세계적인 석학들이 자기의 지성을 동원하여 내세를 부정한다 해도 천국과 지옥은 실재로 존재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확신하는 것은 누가 천국을 경험하고 돌아와서 말했기 때문이 아니라 절대 진리인 성경이 우리에게 천국을 말하고 지옥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표는 누가 뭐라해도 천국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선한 싸움을 싸우는 우리에게 이 땅에서 경험할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없다면 아니 달려갈 길을 마친 우리에게 완성된 천국이 없다면 지금 우리의 신앙생활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천국이 없는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천국의 소망이 없는 소망은 산 소망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누가 그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누리며 인생의 마지막 날에 영광스러운 천국에 들어갑니까?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이란 무엇일까요?
■ 구원이란 무엇인가?
첫째로, 죄 사함을 받는 것이다.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14절)
죄인 된 우리 인간이 구원을 받으려면 반드시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죄 사함을 받으려면 반드시 그 죄 값을 치루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 죄 값을 치루지 않고는 누구도 그 죄를 사함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롬6:23절을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그러나 죄 값을 좀 더 세분하여 살펴보면 죄 값은 ① 수치 ② 형벌 ③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사함 받으려면 누군가 나를 대신하여 이 세 가지 죄 값을 치루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이 자신을 구원할 수 없듯이 죄인은 그 죄 값을 치룰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찾아오사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 값을 완벽하게 치루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 값을 치루기 위해 온갖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발가벗김을 당하셨고 갈대로 머리를 맞으시며 침 뱉음을 당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옥에서 받아야 할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목마름의 고통을 당하셨고 손과 발에 대못이 박혀 뼈가 이그러지는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가시면류관을 쓰셨고 채찍에 맞아 쓰러지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께로부터 버림을 받는 영적인 죽음을 당하셨고 영혼이 육체를 떠나는 육체의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완벽하게 우리의 죄 값을 치루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운명 직전에 “다 이루었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의 뜻은 헬라어로 “테텔레스타이” 값을 지불하다, 완불하다, 청산하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생명을 내어 주심으로 그 피 값으로 우리를 속량하여 죄 사함을 얻게 하셨습니다. 과거 노예나 죄수를 위하여 일종의 보석금 같은 속전을 지불하여 그를 자유롭게 하였던 것처럼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피 값으로 우리로 죄사함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둘째로, 흑암의 권세에서 건짐을 받는 것이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13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 내었듯이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아그립바 왕 앞에서 간증하면서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행26:18절a)라고 말했습니다.
흑암의 권세는 사탄의 세력을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기 전까지 어둠의 세력인 공중권세 잡은 자에 의해 지배를 당하였습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2:2)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사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셨으로 더 이상 흑암의 권세는 우리를 지배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하게 된 것입니다. 과거에는 우리가 사탄의 종이었고 공중 권세잡은 자인 사단의 지배를 받으며 소망 없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예수를 믿는 순간 그 아들 안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 흑암의 권세에서 아들의 나라로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13절)
‘옮기셨다’는 말은 헬라어로 ‘메테스테센’ 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고대 사회에서 정복자들이 싸움에서 이기게 되면 한 나라의 국민 전체를 새로운 땅으로 이주 시키는 것을 가리킬 때 쓰는 말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포로된 자리에서 건져내사 가나안 땅으로 옮기셨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은 죄와 죽음이 지배하는 사탄의 왕국에서 예수님이 지배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순간 하나님께서 흑암의 권세에서 우리를 건져내사 마귀의 일을 멸하시고 승리하신 그 아들의 나라로 옮겨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은 어둠의 나라에서 빛의 나라로 사망의 나라에서 생명의 나라로 사탄이 지배하고 다스리는 나라에서 왕되신 주님이 지배하고 다스리는 나라로 이미 옮겨진 자들입니다.
이번에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과 전 세계 수 십억의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만델라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치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장례식이 하나의 축제였습니다. 기독교 국가인 남아공사람들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흑암의 권세에서 그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것임을 믿었기에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며 장례식을 치룬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장례식을 영결식이라 하지 않고 천국백성 환송식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란 어떤 곳을 말할까요?
하나님의 아들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지배하고 다스리는 나라를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합니다.
□ 천국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
그러면 왜 천국을, 하나님의 나라를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표현할까요?
천국의 시작과 중심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은 하나님의 아들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사 십자가에서 마귀의 일을 멸하시고 승리하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흑암의 권세에서 우리를 건져 내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천국은 왕 되신 주님의 통치가 있는 곳입니다. 주님의 다스림이 있는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계21:27절b)
그리고 천국에는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가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수 많은 백성들이 흰옷을 입고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서 큰 소리로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계7:10)라며 찬양을 합니다.
예수님도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3) 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삶과 죽음 사이에 근심하면서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빌1:23)고 했습니다.
바울은 죽음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세상을 떠나는 날에 자신의 영혼이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천국의 중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천국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주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천국은 더 이상 천국이 아닙니다.
천국은 황금 길이 아닙니다. 천국은 황금보석 꾸민 집이 아닙니다. 천국은 12 진주 문이 아닙니다. 천국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그 천국을 맛보며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천국이 만일 황금 길이요 열두 진주 문이요, 황금보석 꾸민 집이라면 우리는 이 땅에서 그 천국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천국의 중심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기에 우리는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 지금 천국을 경험하라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사랑의 아들의 나라를 경험하며 살아야 합니다. 천국을 경험하며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천국의 중심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이미 옮겨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13절)
성경은 분명히 우리가 죽는 그날에 “아들의 나라로 옮겨질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고 이미 “옮기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를 믿고 영접하는 순간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우리 가운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가운데 임하였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12:28)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절b)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함께 계시는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사방으로 우겨싸임을 당해도 주님이 그곳에 함께 계시면 그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깊은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주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므로 한 밤중에 찬송을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나라가 그들의 마음 속에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 가운데 438장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내 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주님이 함께 하시는 곳, 주님의 통치가 임하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귀신들이 떠나갑니다. 병든 자들이 고침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 가는 곳 그래서 미움과 증오가 사라지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를 맛보며 살기를 원한다면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사랑해야 합니다. 원수까지라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를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미움과 증오와 두려움이 있는 곳에 어떻게 주님의 나라가 임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14:17절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그곳에 의로움이 있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이 있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천국의 주인이시고 하나님나라의 왕이시고 천국의 중심이십니다. 그러므로 이미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우리들이 이 땅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고 그 발 아래 엎드려 질 때에 주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거룩한 두 손을 들고 어린양의 보혈을 찬양할 때 영광의 주님이 빛으로 우리 가운데 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할 때 그 현장 속에 아들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 천국을 소망하라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땅에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를 누리며 사는 자가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소망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주변을 보면 누가 영광스러운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갑니까? 지금 천국을 누리며 사는 자들입니다. 지금 그 사랑의 아들의 나라를 경험하며 사는 자입니다.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를 누림이고 신앙생활의 최종 목표는 새하늘과 새 땅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천국을 소망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천국에 대한 산 소망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신학자들도 교리적으로 천국을 별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목회자들도 천국에 대하여 자주 설교하지 않습니다. 성도들 역시 지금 사는 세상이 너무 좋아서인지 영광스러운 천국을 소망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성도들은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였고 새 하늘과 새 땅을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인사를 할 때 마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인사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언제 지상의 교회가 가장 거룩하고 성도들이 순결하고 능력있는 삶을 살았습니까?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며 영광스러운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며 살아갈 때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천국에 대한 신앙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도 없고 천국을 누리며 살고자 하는 마음도 없습니다. 단순히 예수를 믿음으로 위안을 얻고 예수를 믿음으로 이 땅에서 복을 받고 예수님의 도우심을 받아 출세하고 성공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그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를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이 세상에서 천국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천국을 이야기할 때 “신자가 천국에 들어간다”는 표현은 없습니다. 천국을 말할 때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주님을 모시고 주님의 임재 속에 사는 것 그 자체가 바로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주님의 임재 속에 살아야 합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미워하는 것을 내가 미워하고 주님이 싫어하는 것을 내가 싫어하고 주님이 기뻐하는 일을 내가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환자를 돌보고 가르치고 비즈니스를 할 때에도 주께 하듯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내 가정이 천국이 되고 직장이 천국이 되고 내 심령이 천국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누가 행복한 사람입니까?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랑의 아들의 나라를 풍성하게 누리며 사는 사람입니다. 저는 우리 오륜의 모든 지체들이 이 땅에서 그 아들의 나라를 풍성하게 누리며 살다가 주님이 내 영혼을 부르시는 인생의 마지막 날에 가장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모습으로 영광스러운 나라에 입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